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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로드, 캐나다 퀘벡 여행여행기행 2023. 3. 16. 07:06반응형
여행을 몰랐던 시절, ‘메이플 로드(Maple Road)’를 단순히 고유명사로 여긴 적이 있다. 장소와 장소를 잇는 ‘단풍길’이겠거니했다. 막연하고 무심하고, 어쩌면 무식하다고 해도 할 말 없는 생각이다.
그래도 가을만 되면 어김없이 메이플로를 한 번쯤 읊조리고는 했다. 국기에 새겨진 캐나다의 상징, 캐나다 여행의 종착지…. 뉴스에서, 잡지에서, SNS에서 굳이 찾지 않아도 보게 된 단어가 메이플 로드였다.
메이플 로드는 단순히 길을 뜻하지만은 않는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퀘벡시에 이르는 800km의 숲길을 포함해, 길이 지나는 도시와 국립공원, 강과 호수와 섬 곳곳을 아우른다. 기차를타고 단풍길을 달리는 아가와 캐니언 코스, 바다와 맞닿은 단풍 명소이자 <빨강머리 앤>의 배경이 된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 사이는 차로 꼬박 24시간을 달려야 할 만큼 멀리 떨어져있다.
여행사의 메이플 로드 패키지여행 대부분은 토론토, 오타와, 몬트리올, 퀘벡 등 몇몇 도시를 엮어 코스로 짠다. 짧은가을을 있는 힘껏 취하겠다는 듯 열흘 전후 일정을 빡빡하게잡는다.
어느덧 찾아왔다 어느새 사라질 계절을 앞두고, 이번 가을만큼은 느리지만 깊이 사색하기로 결심했다. 코스는 퀘벡을 중심으로 짰다. 퀘벡은 토론토에서는 비행기로 1시 반, 몬트리올에서는 차로 2시간가량 걸린다. 걷기 좋고, 여유롭게 쉬기 좋다.가을을 밀도 있게 즐기는 데 손색없는 1박 2일 여행지다.
캐나다의 상징을 품은 이국적 도시
퀘벡은 캐나다답지 않은 도시다. 17세기 프랑스인 사뮈엘 드 샹플랭이 개척했고, 프랑스에서 이주민이 대거 몰려와 도시를 형성했다. 퀘벡주에 속한 도시 퀘벡과 몬트리올은 모두 ‘북미의프랑스’ 또는 ‘북미의 파리’로 불린다. 도시의 기원이 프랑스에서비롯해서다. 두 지역 모두 지금도 인구의 90%가량이 프랑스계이고 영어와 프랑스어를 혼용하며, 일상에서는 프랑스어를 더많이 쓴다. 골목이나 도시 곳곳에서 프랑스어를 흔히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는 퀘벡이 더 먼저 개발돼 의미 있게 여겨진다.
퀘벡에는 멕시코 이북 지역에서 유일한 요새가 있다. 1759년 영국-프랑스 간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이 미국의 침략에 대비g하기 위해 4.6km에 달하는 요새(La Citadel)를 쌓았다. 성벽은수백 년 동안 단 한 번도 공격받지 않았다. 퀘벡의 구시가에 d우뚝 선 위엄 넘치는 요새는 고유의 역할이 줄어든 대신 캐나다 대표 여행지이자 상징으로 거듭났다. 요새 곳곳에는 ‘JE MESOUVIENS’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국회의사당, 자동차 번호판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문구다. 직역하면 “나는 기억한다.”프랑스인의 피가 흐르는 퀘벡 사람들이 역사와 문화, 언어를각인하는 방법이다.
캐나다 퀘벡 하면 메이플시럽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전 세계 메이플시럽 판매량의 70%가 퀘벡산이다. 퀘벡에서 벗어나 퀘벡주 소도시로 갈수록 캐나다의 상징인 단풍나무가 많아진다. 지금은 시즌이 아니지만, 봄이 오면 메이플시럽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다. 다시금 되새기자면, 가장 캐나다답지 않으면서 가장 캐나다다운 곳이 퀘벡인 셈이다.400년 역사의 구시가 여행 퀘벡 여행에는 구도심 관광이 필수로 꼽힌다. 1893년에 건축된 역사적 호텔, 페어몬트 르 샤토 프롱트나크를 중심으로 시간을거슬러 여행할 수 있다. 고풍스러운 중세 건축물과 아기자기한 상점, 거리 곳곳의 화려한 프레스코 화가 사계절 내내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언젠가 드라마 <도깨비>가 방영될 당시에는 ‘도깨비 루트’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드라마에 나온 장소마다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인파로 줄이 길게 늘어섰다는 후문이다. 그중에서도 호텔의 황금 우체통과 골목의 빨간 문 앞이 특히 북적였다.
400년 역사의 구시가 여행
여정의 시작점인 페어몬트 르 샤토 프롱트나크는 청동 지붕과 붉은 벽돌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중세 건축물이다. 고풍스러운 외관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내부 장식을 실내에서 고스란히 만날 수 있다. 아치형 창문, 카펫과 대리석의 조화, 반짝이는 샹들리에와 황금빛 장식이 질서 있게 펼쳐진다. 한 세기를 넘어 생존한 호텔은 세계 각국 수많은 명사의 잠자리였고, 역사적 사건의 출발선이었다.
영국의 조지 4세와 엘리자베스 여왕, 모나코의 그레이스 켈리 왕비와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 등이 머물렀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결정된 곳이기도 하다. 호텔에서 숙박하지 않아도 가이드 투어를 통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약하면, 가이드가 1시간가량 호텔 구석구석을 안내하며 역사적 일화를 들려준다.
호텔 주변으로는 ‘테라스 뒤프랭’이라는 광장이 펼쳐진다. 이곳을 중심으로 강변을 향해 내려가면, 유럽풍 골목인 프티 샹플랭을 품은 구시가로 이어진다. 뒤편 언덕으로 오르면 요새, 즉 시타델과 연결되며 영국군과 프랑스군 격전지였던 에이브러햄 평원까지 통한다. 테라스 뒤프랭을 사이에 두고 아래쪽은 로어 타운(Lower Town), 위쪽은 어퍼 타운(Upper Town)이라고 한다. 지형 그대로를 이름으로 붙인 셈이다. 우선 발끝은 로어 타운, 즉 프티 샹플랭으로 향했다. 여행 성수기를 맞은 거리에서 온갖 언어가 뒤섞여 들려온다.
프티 샹플랭까지는 아주 가파른 계단이나 지상 케이블카 같은 푸니쿨라를 통해 내려갈 수 있다. 계단은 ‘목 부러지는 계단’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다. 예부터 워낙 경사가 급해 다치는 사람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푸니쿨라 역시 타는 동안에는 실감할 수 없지만, 레일의 경사각이 45도에 이른다. 계단을 내려가든 푸니쿨라를 타든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모두 그림 같다.골목은 무척 아기자기하다. 창틀부터 화단과 가로등, 지붕까지 다채롭다. 왕관과 촛대와 창 문양을 넣은 중세 유럽풍 간판이 골목에 입체감을 더한다. ‘Hello’ 대신 ‘Bonjour’를 적은 입간판도 있다. 상점 대부분이 토끼 요리 전문점, 양모 소품점, 수제 모카신 상점, 사과잼과 메이플시럽 판매점처럼 들를 목적이 분명하다. 개성 가득한 갖가지 가게가 프티 샹플랭을 총천연색으로 꾸미고 있다.
골목을 누비다 보면 노트르담 대성당과 한 번은 마주친다. 몬트리올의 유명한 대성당과 같은 이름이지만, 이곳은 소박한 한편 역사는 더 오래됐다. 이곳의 노트르담은 350세를 훌쩍 넘은, 북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단정한 석조 건축물에 부는 황금빛 기물로 화려하게 치장했다. 여러 차례 화재 를 겪으며 많은 요소가 소실됐지만, 외벽과 종탑만큼은 지을 당시의 것 그대로다.노트르담 대성당에서 1분만 더 걸으면 골목의 명물인 프레스코화를 볼수 있다. 혹여 지나쳤다면 발걸음을 돌려서라도 꼭 가보길 권한다. 건물 벽 한면을 통째로 할애해 중세 시대로 통하는 관문 같은 벽화를 그려 넣었다. 작품은 꼬박 20년 전인 1999년 화가 12명이 2,550시간에 걸쳐 완성했다. 벽화 속 인물들은 어깨동무를 할 수 있을 만큼 내 키와 비슷하다.
2차원 평면의 벽화속에서 프티 샹플랭 거리를 배경으로 퀘벡의 역사적 인물 16명이 입체적 모습을 뽐내고 있다. 저물녘 프티 샹플랭에서 벗어나 테라스 뒤프랭으로 돌아갔다. 호텔 뒤편 언덕에 올라 도시와 강을 내려다본다. 일찍이 나무에서 독립한 조숙한 나뭇잎들 이 잔디 위 곳곳에서 바람을 타고 활보한다. 멀리서 바라본 나무들의 이파리는 기둥과 거의 비슷한 색을 띤다. 해가 강 너머로 저물면서 도시의 색도 노을에 잠긴다. 일과를 마친 현지인들이 운동복 차림으로 광장을 누빈다. 가방에 구겨 넣은 패딩을 꺼내 입고 해 지는 저녁의 짧은 환희를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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