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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 여행, 진주향토민속관, 젤코바 1920, 진주중앙시장
    여행기행 2023. 4. 4.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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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 촉석루

    진주는 경남의 행정 중심지, 교육 도시, 선비의 고장, 문화의 산실 등 많은 수식어가 붙지만, 그중에서도 ‘소목장의 고장 '진주 진주를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여행에 앞서 테마가 무엇이든 진주를 제대로 탐사하려면 공부가 필요함을 예감했다. 

     

    고려 시대부터 개화기까지, 진주는 남강을 통해 흘러온 왜구에 의해 끊임없이 침략을 받았다. 때로는 약탈당하고 때로는 왜적을 물리치며 사뭇 숨 가쁜 시간을 흘려보냈고, 그 속에서도 한국 고유의 색을 유지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그 역사적 사건과 지리적 요건을 알지 못하면 진주의 진면목을 모른 채 껍데기만 보는 셈이다. 그래서 진주 여행에서는 사료를 읽는 일이 풍광에 취하는 일만큼이나 중하게 여겨졌다.


    서울에서 진주까지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함양과 가까워지면서 지리산에 인접하다가 산청을 통과하며 지리산 서북부 끝자락을 스쳐 지난다. 지리산에서 진주까지 가깝게는 차로 30여 분, 지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주 시내의 야트막한 동산인 선학산 전망대에만 올라도 지리산 천왕봉과 노고단이 아스라이 보인다. 진주시 아래로는 사천과 고성, 통영 등 남해안과 접한 해양 도시가 즐비하다. 해안가에서 자란 나무는 풍랑에 뒤틀리면서도 굳건히 생명력을 유지해 무늬가 많고 결이 단단하다. 이 같은 지형적 조건 덕분에 진주는 전국에서 소목장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지리산의 우람한 나무부터 남부 해안가 무늬목까지 양질의 목재를 원활히 공급받을 수 있던 까닭이다. 또 하나, 조선 시대 12공방이 자리한 통영과 인접한 것도 진주를 소목장의 고장으로 이끌었다. 12공방은 임진왜란 당시 군수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전국 각지 장인을 불러들여 설치한 기관으로, 전란이 끝나고 12공방의 장인은 당대 문화·행정·교육 중심지인 진주나 진주 외곽에 터를 잡고 진상품과 혼수품 등 가구를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 1991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된 정돈산 선생의 제자들이 전국구로 활약하면서, 진주는 소목장의 고장으로 정착하기에 이른다. 현재 진주에는 취목공방과 단원공방, 고전공방, 한송공방 등 오랜 역사의 목공방이 호수를 끼거나 숲을 등진 곳에서 명맥을 잇고 있다.


    한때 진주의 장석과 고가구 8만여 점을 전시한 진주향토민속관(구 태정민속박물관)이 시내에 자리했으나, 현재 문을 닫고 재개관을 준비 중이다. 올해 말에는 명석면에도 시 주관의 진주 목공예 전수관이 마련될 예정이다. 공방을 일일이 찾기에는 일정이 빠듯하고, 목공예 현황을 직접 볼 박물관은 지금으로서는 없는 셈이다. 고심하던 차에 귀동냥으로 진주 시내 한복판에 목가구를 감상할 수 있는 카페가 있다 전해 들었다. 문을 연지 반년 정도 된 목공예 갤러리 카페다. 진주 시내 한복판, 조금은 뜬금없는 자리에 갤러리 겸 카페는 자리했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숨을 고르며 묵직한 나무 문을 밀고 ‘젤코바 1920'으로 들어섰다.

    어제의 나무가 오늘의 예술로

     

    무려 30년, 성민기 씨가 나무를 수집한 세월이다. 전국 각지에서 그러모은 목재는 90% 이상이 한반도에서 나고 자라 수명을 다한 나무다. 수령이 700년 된 느티나무 무늬목부터 생동하듯 뒤틀린 용목, 10그루에 한 그루 나올까 말까 한 먹감나무 판재등 국내에서 구할 수 있다는 귀한 목재는 이곳에 다 있는 듯하다. 평생을 나무에 헌신한 성민기 씨는 인생을 재정비하며 작품을 공유하기 위해 목공예 갤러리 카페 젤코바 1920을 차렸다.


    “그동안 수집한 목재로 마루를 깔고 문짝과 창문, 테이블을 짜 넣었습니다. 벽면의 ‘쫄대’ 역시 직접 구상한 것이지요.” ‘좋은 나무’를 위해서라면 전국 어디든 한달음에 달려간 성민기 씨의 집념이 젤코바 1920 구석구석에 깃들어 있다. 고가구에 어린 한국적 고아함, 풍금과 괘종시계의 근대적 운치가 ‘나무’라는 공통분모 아래 교묘하게 어우러진다.


    성민기 씨는 내친김에 4층 쇼룸까지 직접 안내한다. 카페가 프리뷰 혹은 예고편이라면, 쇼룸은 본편이다. 개화기 교실을 연상 시키는 거실 창 너머 나무로 빚은 온갖 진귀한 형상이 내다보인다. 가구와 스피커, 목조각품 등 한층 값진 작품이 거실과 방, 다락까지 빼곡하다.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조복래 소목장의 작품 역시 여러 점 볼 수 있는데,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까지 전승공예대전에서 다수 수상한 작품은 성민기 씨가 디자인을 의뢰해 완성한 작품으로 의미 깊다.


    진주 고가구는 선비의 정신을 기리는 잉어와 매화 조각 장석이 유독 많다고 전해진다. 가구를 치장하는 수많은 장식 중에서도 진주 특유의 색을 찾는 일이 사뭇 호사스럽게 여겨진다. 노각나무 향기가 은은하게 감도는 공간에서 눈으로 감상하랴 손끝으로 느끼랴 질문하고 대답 들으랴 오감이 쉴 틈 없다.


    10분 같은 1시간을 보내고, 나무 향에 흠뻑 취한 채 카페 밖으로 나섰다. 나무 문 안팎 분위기가 퍽 달라 꿈에서 깬 듯하다.


    카페 건너편으로 오래된 시장이 있다기에, 몽롱한 감상도 깰 겸 식사도 할 겸 좁은 도로를 따라 걸었다. 1880년대 개설돼 역사가 100년이 넘은 진주중앙시장은 오래된 만큼 노포가 많기로유명하다. 사람 나이로 치면 고희쯤 된 진주비빔밥 전문 제일 식당과 60여 년 전통의 복국 전문 하동집, 팥빵에 데운 팥죽을 얹어 건네는 70년 역사의 수복빵집까지 중앙시장 명물을 넘어 진주 대표 맛집으로 꼽힌다. 진주에서 첫날이니만큼 진주를 상징하는 비빔밥으로 메뉴를 정했다. 그 후 빈 그릇을 보기까지 과정은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다. 그저 ‘맛있다’를 연발했고 세차게 수저질을 했으며, 마지막 한 입까지 만족스러웠을 뿐.

     

    진주중앙시장은 말 그대로 진주 중앙부에 위치해 남강과 진주성까지 걸어가기에도 부담 없는 거리다. 걷는 동안 어느덧 해가 저물어 멀리 진주성에 하나둘 조명이 켜진다. 남강 산책로를따라 걷고 뛰는 시민 사이로 자연스럽게 끼어들며 한낮 태양만큼 찬란한 ‘밤빛’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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