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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루떡 기원, 역사문화예술뉴스 2023. 3. 2. 08:00반응형
서양이 밀가루를 바탕으로 한 빵 중심 문화를 발전시켰다면, 우리는 곡류를 이용한 떡 문화가 크게 발달했다. ‘밥위에 떡’이라는 속담이 생길 정도로 떡은 우리에게 특별한 음식이었다.
삼국 시대 이전의 유물로 떡을 만드는 도구인 갈판과 갈돌 그리고 떡시루가 출토된 것을 보면 부족국가 시대부터 이미 떡을 만들어 먹었음을 알 수 있다. 그당시에는 쌀 생산량이 많지 않아 여러 잡곡류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었다. <삼국유사>와 같은 기록서에 떡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쌀 생산량이 늘어난 삼국 시대에 이르러 보다 다양한 종류의 떡이 출현한한 것으로보인다.
고려 때는 불교의 융성과 맞물려 떡과 차를 곁들이는 사찰 문화가 성행했고, 조선 시대에는 농업의 발전과 더불어 다양한 종류의 과실과 약재를 가미한 어엿한 음식 문화로 성장했다. 지역마다 개성 있는 떡을 만들어 먹고 관혼상제 시 필수의례 음식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도 조선 시대다.
절기별로 만들어 먹는 떡도 참으로 다양하다. 1월 대보름에는 보름달처럼 밝고 풍요롭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달떡을 나눠 먹었다. 한양의 세시 풍속을 월별로 구분한 <열양세시기>에는 “2월 초하룻날 콩으로 소를 넣고 솔잎을 깔아 시루에 찐 후 농사일을 준비하는 노비를 위한 송편을 준비했다”는 기록이 있다. 음력 3월 삼짇날에는 어린 쑥을 채취해 봄 향기가 그득하게 올라오는 쑥버무리를 즐기며 봄기운을 만끽했고, 4월 초파일 즈음은 느티나무에서 새싹이 올라오는 절기로 느티나무의 연한 싹을골라 시루로 쪄낸 느티떡을 즐겼다.5월 단오에는 수레바퀴 모양의 수리취떡을 만들어 한 해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고, 6월 유두에는 한여름 별식으로 밀전병을 만들어 물놀이를 하며 피서를 즐겼다. 견우와 직녀가만나는 7월 칠석에는 꿀물로 소를 만든 달콤한 떡 수단을, 8월에는 그해 수확한 곡물로 송편을 만들며 온 가족이 모여 한해 농사를 격려하고, 9월에는 향이 진한 국화떡을 먹으며 단풍을 즐겼다.
10월 상달은 시루떡 중 맛이 가장 좋다는 무시루떡을 즐겼는데, 가을 무는 연중 제일 실하고 달아 시루떡 재료 중 으뜸으로 여겼다. 11월 동지는 절기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짧은 날로 새알처럼 동그랗고 쫀득한 새알심떡을 넣은 팥죽을 먹으며 긴긴 밤을 보냈다.
오늘날의 시루떡은 찹쌀가루와 멥쌀가루를 번갈아 깔고 그 위에 팥고물을 얻는 단순한 형태지만, 옛 시루떡은 종류가 200종이 넘을 정도로 다채로웠다. 조선 후기 생활 지침서 <규합총서>에 따르면, 감자 가루를 섞은 감자병, 한약재를 주재료로 한 복령조화고, 햇과일을 재료로 한 신과병, 복숭아와 살구를 조화시킨 도행병, 쌀가루로 만든 백설기, 단감을 갈아 넣은 석탄병, 쑥떡, 콩버무리 등 수없이 많은 종류가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시루떡은 특히 고사떡으로 널리 알려졌다. 지금은 사라진 풍습이지만, 10월 상달에는 대청마루, 장독대 등에 시루떡을 놓고 집안 터줏대감인 성주에게 정성 들여 고사를 지냈다. 옥황상제의 맏제자이자 건축의 신으로 믿은 성주는 집안의 중심이자 대들보로 집안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여겼다. 떡을 만드는 데 있어 시루는 영원한 동지다.청동기 시대 유적지인 함경북도 나진도 대초도 해역에서 모습을 드러낼 만큼 시루의 역사는 유구하다. 시루는 참 묘한 그릇이다. 모든 그릇은 내용물을 담기 위해 존재하지만, 시루는 밑이 숭숭 뚫려 물을 부으면 죄다 밖으로 쏟아져버리는 형태다. 구멍 막힌 시루는 결코 떡을 찔 수 없다. 뜨거운 증기가 시루 밑바닥 구멍을 통과하면서 습기는 시루가 흡수하고 열기는 서서히 달아오르며 떡이 골고루 익는 원리다. 재미있는 사실은 시루 구멍은 항상 양(陽)의 숫자인 홀수로 뚫었다는 것. 시루는 떡을 찌는 역할뿐 아니라 콩나물이나 녹두채를 기르는 용기로도 쓰였다. 용도에 따라 시루의 생김새도 서로 달랐다. 떡시루는 키는 작고 너비는 넓었고, 콩나물시루는 너비보다 키가 높아서 콩나물 성장에 적합한 구조였다.
떡과 관련된 일화도 무수히 많다. 그중 거문고 명인인 백결 선생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신라 자비왕때 백결 선생이 경주 남산 밑에 살고 있었는데, 워낙 청빈하고 인품이 고고하였다고 전해진다. 100번 이상 덧댄 누더기를 즐겨 입는다고 해 백결(百結)이란 이름으로 칭송받고 회자되었다고. “세모(歲暮). 이웃집 방아 소리에 아내는 곡식이 없음을탄식한다. 선생은 ‘부귀가 하늘에 달렸는데 어찌 상심하느냐’며금(琴)을 타 방아 소리를 들려주며 위로하니 이를 ‘대악( 樂, 방아타령)’이라고 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섣달 그믐날 이웃에서는 떡방아 찧는 소리가 나는데, 그의 집에는 양식이 떨어져 부인이 슬퍼하자 백결 선생이 거문고로 떡방아 소리를 부인에게 들려주며 위로했다는 이야기다.
왕조에 얽힌 이야기도 있다. 신라의 두 번째 왕인 남해왕이 세상을 떠나며 석탈해에게 왕위를 계승한다는 유언을 남긴다.그 당시 남해왕의 아들인 유리와 대신들은 선왕의 유지를 계승하려하지만, 석탈해는 극구 사양하며 유리가 왕위에 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의 주장이 엇갈리며 왕위의 공백이 길어지자 석탈해는 예부터 덕이 높은 사람이 치아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떡을 깨물어 둘 중 치아의 수가 더 많은 사람이 왕위에 오르자는 제안을 한다. 떡을 깨물어보니 유리 왕자의 치아가 하나 더 많은 것으로 판명되어 신라의 세 번째 왕인 유리 이사금에 오른다. 왕을 의미하는 이사금이란 잇자국이 많은 사람을 뜻하며, 탈해는 유리 이사금을 성심으로 보좌하다가 신라 네 번째 왕인탈해 이사금에 오른다.
제주도 무속 신화 중 하나인 <차사본풀이>에도 떡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차사본풀이>는 망자를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이야기의 한 종류로 염라대왕이 내어준 강아지 한 마리와 떡 세 덩어리가 저승에서 이승으로 향하는 길잡이로 등장한다.반응형'문화예술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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