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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안 섬 기행, 암태도,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여행기행 2023. 2. 2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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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안은 전라남도 남서부 해역 1,000여 개 섬으로 이뤄진 군이다. 지도를 펼치니 저마다의 매력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섬이 많다. 태곳적 자연의 모습을 간직한 홍도, 12사도 순례길로 이국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병풍도, 아름다운해변과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명소로 가득한 하의도와 비 금도, 바람이 쌓은 모래언덕 풍성사구로 유명한 우이도….

    SNS를 뒤져보니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지만 1박 2일의 짧은 일정으로는 어림도 없을뿐더러 여행자에게는 발걸음 코스를 짜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욕심을 버리고 섬이지만 다리가 놓여 배를 타지 않아도 이동할 수 있는 곳을 가보기로 했다. 최근 일명 ‘보라섬’으로 뜨고 있는 중부권과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갯벌 염전이 펼쳐진 북부권 일대를 둘러보기 위해 남도의 섬, 신안으로 향했다.

     

    KTX를 타고 목포에 도착해 렌터카를 빌렸다. 신안 중부권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안좌도와 반월도, 박지도를 잇는 보라섬으로 정했지만, 길목마다 들르고 싶은 곳이 많았다. 목포에서 출발해 10여 분 거리의 압해도에 닿았다. 신안군청이 자리한 곳이지만 고요하고 한적한 풍경이 여유를 준다. 

     


    서쪽 끄트머리 송공산 자락의 천사섬 분재공원을 찾았다. 백보다 개화 시기가 빠른 애기동백나무에 아직 붉은 꽃송이가 매달려 있었다. 애기동백이 양옆에서 팡파르를 불어주는 듯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참말로 좋구먼’, ‘언제나 함께’ 같은 달달한 메시지가 이어져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애기동백 산책로는 습지식물 자생지와 연결되는데 여기선 다도해의 푸르른 바다 정원이 한눈에 담긴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하다. 분재공원이라는 이름값은 1,00여 점에 이르는 명품 분재가 담당하고 있었다. 분재원에는 소나무를 비롯해 모과나무, 팽나무, 향나무, 금송 등으로 만든 크고 작은 분재가 가득하다. 아프리카 석조 문화를 대표하는 쇼나 조각 작품을 곳곳에서 만날  있고, 신안 출신 우암 박용규 화백의 작품을 감상할 수 는 저녁노을 미술관도 여기에 있다.

    아직 갈 길이 멀어 서둘러 천사대교를 건넜다. 2019년 개통한 이 다리 덕에 신안 중부권의 압해도, 암태도,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까지 큰 섬 다섯 곳이 육지 생활권이 된 셈이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천사대교를 건너 암태도에 닿았다. 은도와 팔금도 방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SNS에서 핫한인증 명소가 나타났다. 이름하여 기동 삼거리 벽화. 온화한 소를 띤 어르신 두 분의 벽화 위로 애기동백이 절묘하게 개져 동백꽃 파마를 한 것처럼 보이는 유쾌한 벽화로, 누구라도 카메라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벽화 속 주인공이 집에 살고 있는 부부라는데 이렇게나 유명해질 것을 예상이나 하셨을까?

    보라섬으로 가려면 팔금도 방향으로 내려가야 하지만 사랑을 이뤄준다는 전설의 여인송과 국내 최대 수석박물관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자은도에 들르기로 했다. 자은도 서쪽 계해변에는 아름드리 소나무 100여 그루가 병풍처럼 서있다. 그중 두 다리를 하늘로 길게 뻗은 듯한 모습의 소나무에 특별히 ‘여인송’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사소한 말다툼 뒤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한없이 기다리던 한 여인의 안타까운 전설과 함께. 훗날 사람들은 기이하고 우람한풍모를 뽐내는 여인송이 진실한 사랑을 이어준다고 믿으며 이곳을 찾았다. 소나무가 뿜어내는 좋은 기운과 간헐적으로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어우러져 마음이 편안해졌다. 

     

    양산해변 인근에는 1004섬 수석미술관과 세계조개박물관이자리한다. 1004섬 수석미술관은 해안가에 뒹구는 돌멩이마저 예술 작품으로 거듭난 현장이다. 미술관 정원에 있는 대형 수석과 내에 전시된 작품은 솜씨 좋은 예술가가 만든 처럼 아름답다. 자연의 신비한 힘을 제대로 보여주는 곳이다. 세계조개박물관에서는 다양한 조개와 고둥을 만날수 있는데, 그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감탄하게 된다. 

    고대에 라색 천연염료를 바다 달팽이에서 얻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양산해변과 1004섬 수석미술관, 세계조개 박물관 등을 아울러 ‘1004뮤지엄파크’라고 한다.  

    드디어 보라섬으로 가는 길. 한나절을 오롯이 보내고 싶었지만 빠듯한 일정이 되고 말았다. 안좌도~반월도~박지도를 잇는 길이 1,462m의 목교가 놓이면서 많은 이들이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됐다. 

    이 다리는 평생을 박지도에서 살아온 김매금 할머니의 ‘두 발로 걸어서 섬을 건너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으로 실현된 것. 할머니의 소망을 접한 신안군에서 다리를 놓았고, 여기에 섬의 특징을 살린 보라색을 더해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에서도 찾는 사랑받는 여행지로 거듭났다.

    보라섬 여행의 시작과 끝은 정하기 나름이다. 반월도를 먼저들러 박지도를 돌아 나와도 되고 박지도~반월도 순으로 여행해도 된다. 단, 섬에 입장하면서부터는 정말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둘 것. 별도의 입장료가 있는데 보라색 옷이나 소품을 미리 챙기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퍼플교로 불리는 다리를 건너 반월도를 먼저 찾았다. 섬의 형태가 어느 곳에서 봐도 반달 모양으로 보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마을을 한 바퀴 다 돌아볼 요량으로 반월도 초입에서 자전거를 빌렸다. 섬을 빙 둘러 산책길이 나 있어 걷기도, 자전거로 달리기도 좋았다. 강원도나 제주도에 갈 때면 일부러 해변 드라이브 코스를 찾고는 하는데, 차창 너머로 바다를 감상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봄바람이 피부에 와닿는 감촉이 참 좋았다. 역시 마주치는 것은 온통 보랏빛이다. 자그마한 마을의 지붕은 물론이고 마을버스, 누군가의 오토바이, 심지어 농사를 준비하며 흙을 덮어놓은 비닐까지 다 보라색이다. 

    섬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산책로 중 1.8km 구간에는 보라색 국화인 애스터가 피고 진다. 아직 꽃이 필 계절이 아니었기에, 꽃이 만개할 가을 무렵 한번 더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박지도는 또 어떤 모습일까? 반월도에서 박지도로 연결된 퍼플교를 달렸다. 박지도는 섬 모양이 박을 닮기도 했고 박씨가 처음 들어와 살았다고 해서 불리게 된 이름이다. 이곳 역시 섬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산책로가 나 있다. 왕도라지꽃과 라벤더, 루드베키아가 피는 계절이 되면 보랏빛꽃과 향기로 황홀할 지경이 될 듯하다. 

    박지도에는 약 1만 3,200m²(약 4,000평) 규모의 라벤더 정원이 있고, 섬 둘레길 1.5km에 보라 루드베키아와 접시꽃도 식재해놓았다. 아직 꽃은 피지 않았지만 카메라에 담긴 사진마다 동화 속 한장면처럼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자전거를 오랜만에 타기도 했고 섬을 한 바퀴 다 돌아온 터라 힘들기도 했지만 푸른 바다를 곁에 두고 달린 것은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은 추억거리가 되었다. 짙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보랏빛이 앙상블을 이룬 신안 보라섬의 풍경을 마음속 깊이 저장해두었다.  

    신안 북부로 향하는 길. 우리나라 최대의 갯벌 염전이 펼쳐진 증도에서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라는 영광의 흔적을 보기 위함이었다. 증도로 가기 위해 다리 몇 개를 건너고 마을 몇 곳을 지났는지 모른다. 목포에서 무안으로, 무안을 빠져나와 신안의 지도읍을 지나 송도와 사옥도를 거쳐 증도대교를 건너서야 드디어 증도에 도착했다. 자동차로 신안 중부 압해읍에서 증도로 이동하는 데만 2시간 넘게 걸렸다. 

    미리 알았다면 증도는 다음 기회로 미뤘을 거라고 아주 잠깐 투덜댔다. 창밖으로 보이는 평온한 풍경의 논과 밭, 부드럽게 굴곡진 산등성, 황톳빛 갯벌과 푸르른 바다가 지루하게 달려온 마음을 달래주었다. 태평염전이 위치한 섬 서쪽까지는 금방이었다. 마침 썰물이어서 넓은 갯벌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고, 그 위를 가로지르는 목재 다리가 차를 멈춰 세웠다. 증도의 명물 짱뚱어다리다. 

    470m에 달하는 갯벌 탐방로로 짱뚱어와 갯지렁이, 농게, 칠게 등 다양한 수생생물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아직 추위가 남아 있어서인지 수생생물의 활동은 드물었다. 간혹 갯벌 위로 펄쩍 뛰어오르는 짱뚱어가 보여 반가웠다. 

    낮에는 이렇게 살아 숨 쉬는 갯벌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면 저물녘에는 고운 빛으로 갯벌을 물들이는 일몰을 마주할 수 있다. 제 몸을 노랗게 물들인 태양은 금세 하늘을 뒤덮고 바다와 갯벌에 후광을 비추다 활활 타오르듯 붉은 기운을 내뿜으며 수평선 아래로 떨어진다. 아름다운 이 순간을 다리 위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조금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면 태양 아래 짱뚱어다리와 바다 그리고 갯 벌까지 한눈에 담겨 신안 최고의 풍경으로 남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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